奬學活動의 槪要

제주은행 강남지점장 金 南 植

  金明信 同門의 지난 10여年間 자신이 불우하였던 학창시절을 生覺하여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실천한 경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남5녀의 어려운 가정에서 어린나이에 가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長男으로 태어나 온갖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객지 부산에서 어느정도 事嶪의 立志를 마련하는 단계에서 고향이 좋고 친구들이 좋아서 종종 고향에 오게되었고 고향에 오게되면 가까운 몇몇 친구들과 세상사에 대하여 의논을 하면서도 어울려 놀기를 무척이나 좋아 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 우리들은 이렇게 만나서 즐겁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무엇인가 이사회에 유익하고 보람된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데 의견이 집약되어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金明信 同門에게 형편이 닿는다면장학사업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1979년 9월 25일 金明信 同門은 事業기반이 잡히지 않았고 돈은 없지만 自身이 한많은 학창시절을 생각할 때 다른사람들은 여유있는자금으로 장학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자기는 벌면서 힘닿는데로 어떤 공명심이나 다른뜻이 전혀 없이 순수하게 어려운 후배들을 돕겠으니 맡아서 관리하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표시 하므로 나는은행원이었기 때문에 관리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그 관리를 맡아 지금까지 운영하여 왔는바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金明信 同門이 基金 출연은 1979년 9월 25일 1차 5,000,000원을 출연하고 그후 6次 걸쳐 18,393,614원을 출연하고 그 후 6次에 걸쳐 18,393,614원을 추가도합 23,393,614원 출연하여 그 이자로서 장학금 지원에 충당하였으나 그간 이자 인하, 수업료의 인상으로 이에 부족하여 기금현금에서 3,393,614원을 전용하여장학금에 충당하였고 장학금 수혜 대상자는 모교 2학년 학생 2명을 선정하여 그학생이 별결격사유가 없는한 고등학교 졸업시까지 수업료 전액을 지원하였으며1979년은 이자 증식기간으로 정하고 1980년 1학기부터 지금까지 16名에 총18,679,800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수혜학생의 선발도 처음 3년간은 모교교장선생님에게 그 선정을 위임하여 오다가 그 이후는 2배수 추천에 의하여 그 중에서 대상학생을 선정하였으며 장학금 지급은 과거 道內에 근무할 때에는 저의 근무지에서 본인이나 그 보호자에게지급하고 道外근무시에는 계좌 송금 방법으로 지급하였으며 장학금 지급시 대상학생들에게 장학금 취지를 설명하고 학력 향상을 위하여 성적이 급격히 퇴보하는 경우에는 장학금지급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본 장학금 취급하면서 있었던 일로서는 초창기 장학금 출연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 학생 추천이 곤란하다는 학교측의 의견이 있었는가 하면 관계 당국에서 본 장학금의 출처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고 내사하였던 일도 있었고 화폐가치의 하락과 금리 인화로 기금에서 증식되는 자금량은 점차 줄어들고 반면에 수업료는 인상되어 지급자금이 모자라는 경우가 있었고 장학재단이 아니기 때문에예금이자에 대한 소득세의 부담과 실명제의 예상과 종합소득세 문제로 어려운점도 많습니다. 

  이제 본 장학사업은 김동문의 뜻에 의하여 제4회 동창회에서 인수 운영하기로결의가 됨에 따라 현재의 장학금 30,000,000원과 증액한 20,000,000원 합하여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1991년도 부터는 더욱더 바람직한 장학 사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90.12.08